태그 : 궤변
2008/01/31   국민의 뜻. [1]
2008/01/29   법치국가, 法痴國家
2007/12/13   전쟁의 올림픽 [2]
2007/11/20   고전 경제와 제품 기안 [2]
2007/10/18   달라도 뭔가 다르다.
국민의 뜻.
속은 거 같냐? 정치가 다 그래.

요즘 정치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참 자주 나오는 표현이 있다.
아니, 요즘이 아니라 내 기억이 닿는 한 오랜 과거부터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 표현이다.


국민의 뜻으로 유신했다.

국민의 뜻으로 탄핵했다.

국민의 뜻으로 운하판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들 해 봤을 것이다.

대체 국민의 뜻이란 게 뭐지?
국민의 뜻이란 국민 전체의 중의(衆意)에 따른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저 사람이 말하는 거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데?
여론 조사 결과도 반대로 나왔잖아?
근데 어째서 국민의 뜻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러한 의문을 가진 선구자들은 많다.
그 중에는 실천하는 분도 계셨으니, 그래서 이런 일이 기록에 남아 있기도 하다.

C.B.R. 은 '국민의 뜻'이란 말을 사용말라
http://news.media.daum.net/politics/assembly/200403/17/ohmynews/v6321762.html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국민'이라는 말 뜻을 잘 못 알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하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논증 1.
  1. 왕은 정치 활동을 하는 권력자다.
  2. 따라서, 왕은 정치가이다.

논증 2.
  1. 대한민국은 국민국가다.
  2. 국민 국가는 국민 자체이다.
  3. 한편, 짐(왕)은 곧 국가다.
  4. 국민은 국가이므로 국민은 짐(왕)이기도 하다.
  5. 따라서, 국민은 왕이다.

논증 3.
  1. 논증 1에서 밝힌 바와 같이, 왕은 정치가이다.
  2. 한편, 국민은 왕이다.
  3. 그러므로 국민이라 함은 정치가이다.
  4. 따라서, '국민의 뜻'은 '정치가의 뜻'이라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심화 학습. 요즘 유행으로 말하자면 퍼더 스터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정치가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정치가로부터 나온다.'



짐은 곧 국가다. 라는 명언이 있다. 프랑스의 한 유명한 정치가가 한 말로, 아주 자주 인용되는 말이니 다 들 열 번 정도는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무시무시한 왕권 정치를 상징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지만, 루이 14세가 이 말을 했을 때 실제 담겨 있던 뜻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 프랑스의 왕권은 상당히 불안정했다. 특히 지방 귀족들의 권력은 중앙 집권 체제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분권과 갈등이 심한 상태였고, 이를 불만스럽게 여겼던 루이 14세가 지방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 말이 바로 '짐은 곧 국가다.' 라는 말이다.

작금의 언론이나, 역사가들이나 입맛대로 편집 수정 왜곡하는 것은 똑 같은 모양이다.
by Fanciski | 2008/01/31 10:37 | 혼돈과 몽상학 | 트랙백 | 덧글(1)
법치국가, 法痴國家
컴퓨터 앞에서 민주주의 수호가 되나?

민주주의(民主主義) 국가는,
어리석은 자를 위한 세상이 온다고 믿는 자들의 국가를 말한다.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는,
인간의 본질적 선함을 믿는 자들의 국가를 말한다.
자본주의(資本主義) 국가는,
돈 이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자들의 국가를 말한다.
사회주의(社會主義) 국가는,
평등과 행복을 가치로 삼는 자들의 국가를 말한다.

이렇듯, 국가(國家)란 단어 앞에 붙는 수식어는, 그 나라가 어떤 주의 주장을 가지는 나라인지를 나타내게 된다. 위의 예 이외에도 저런 예는 많다. 왕정국가(王政國家), 경찰국가(警察國家) 등.

한편, 대한민국 헌법 전문 어디를 찾아 보아도 법치(法治)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법치(法治)국가를 지향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창 시절에 그렇게 배운 글귀는 대체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한편.

음악을 잘 모르거나, 음악적 센스가 뒤떨어지는 사람을 두고 음치(音癡)라고 한다.
길을 잘 모르거나, 길을 찾는 재주가 좀 부족한 사람을 두고 길치라고 한다.
몸이 둔하거나, 운동을 잘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몸치라고 한다.
법을 잘 모르거나, 법을 지킬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법치(法痴)라고 한다.

이러한 규칙성과 더불어 사회적 보편 타당한 가치관에 입각하여 볼 때, 반복 학습된 명구인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이다'란 문구에서 법치란 법치(法治)를 뜻하는 것이라고 관습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법치국가(法痴國家)이다', 란 명구는 참이다.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관습적으로 좌경용공세력이라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타당하다.




대한민국 헌법 문장 중에는 법치(法治)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그 뿐.


by Fanciski | 2008/01/29 17:41 | 혼돈과 몽상학 | 트랙백 | 덧글(0)
전쟁의 올림픽

매우 평화로운 운동 시합 모습이라 아니 말할 수 없지 않은가?


4년 주기로 열리는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가 있다.

올림픽(Olympic)이라고 불리는 대회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는 멋진 구호도 가지고 있는, 명실공히 인정받는 세계인의 대회다. 정상적인 의무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아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주 유명한 행사다.


그런데, 요즘 이 행사가 개최국의 국력을 과시하고 지명도를 올리는 수단으로써 여러 국가들 간의 치열한 유치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원래의 올림픽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비평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이러한 의견은 중국이 2008년 올림픽을 유치했다는 사실을 정치범에 대한 인권 탄압과 반체제 종교인에 대한 숙청에 대한 국제적인 면죄부로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더욱 불거지고 있다.


자, 그러면, 올림픽 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근대 올림픽의 이상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


    근대 올림픽의 정신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이 말은 에텔버트 탈보트(Ethelbert Talbot) 주교가 한 말을,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이 인용한 것으로, 올림픽 강령의 일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이 문귀를 올림픽 정신의 핵심이라고들 평한다. 자유와 평등, 평화와 공존 등의 기본 정신이 녹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들은 말한다.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이어 받아 이하 생략.



정말 그럴까?


원래 올림픽은 고대 올림픽과 근대 올림픽으로 구분된다.
고대 올림픽이란, 말 그대로 고대에 있었던 올림픽 행사를 말한다. 근대 올림픽은, 이 고대 올림픽을 그 정신적 토대로 삼아 1896년 다시 시작된 행사를 말한다. 위에 말한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이어 받았다는 말은, 기원전 776년 전에 시작된 진짜 그리스의 올림픽 행사의 정신을 이어 받았노라, 라고 주장하고픈 것이겠다.


아마도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이런 원칙이 있는 듯 하다.


옛 것은 아름답다. 옛 것은 우아하다. 옛 것은 좋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할게다.


고대 그리스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상당수가 용병으로 입에 풀칠을 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스의 사상가이자 역사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크세노폰도 정치적 낭만에 휩싸여 용병으로 전쟁터에 출병했던 사람이며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카르타고에 고용되어 로마를 격퇴한 적도 있는 것이 그리스 용병이다. 뛰어난 용병술과 마술, 갑옷과 무장의 체계화, 투척 병기의 체계적인 사용 방법, 공성 병기, 그리고 기본적인 시민군의 구성과 운용 방법들을 개발해낸 것도 그리스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 300에서 그리스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묘사한 것은 상당한 거짓말이다.


물론, 올림픽 기간 중에는 전쟁을 멈추고 적대 국가의 시민들이라도 자유롭게 통행을 할 수 있게 하였다는 등의 사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자유로운 통행, 참관, 그리고 경쟁. 이것들의 이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고대 올림픽은, 고대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무력 시위 행사였으며, 군사 회담 장소였다.


고대 올림픽의 경기 종목을 살펴보면, 단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1. 단거리 달리기.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일반적인 경주.

  2. 장거리 달리기. 역시 이상할 것이 없다.

  3. 멀리 뛰기. 평이하다.

  4. 원반 던지기. 무거운 납덩이를 보다 멀리 던지기 위한 시합이다. 맞으면 죽는다.

  5. 창 던지기. 보다 멀리 있는 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대표적인 투척 무기의 사용. 역시 맞으면 죽는다.

  6. 레슬링. 근접 전투의 기본 기술. 무기가 없을 때 가장 강력한 격투술의 하나.

  7. 복싱. 양 손을 서로 끈으로 묶고 상대방이 기절하거나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격투.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다.

  8. 사두전차경주, 쌍두전차경주, 기타 전차경주.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전장에서의 기동성 경쟁. 사고도 자주 발생했으나 전략적인 중요성으로 꾸준히 개최되었다.

  9. 판크라티온. 레슬링과 복싱을 혼합한 본격적인 살인 기술. 실제로 사망자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인기도 가장 많았다.

  10. 경마, 기타 경마경주. 말을 타고 달리는 경주. 말의 종류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가 시행되었으며 말이 아닌 탈 것도 포함된다.

  11. 무장경주. 한 손엔 칼을, 한 손엔 방패를 들고 싸우면서 달리는 경주. 벌거벗고 달리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상대방이 수염을 잡고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시에는 구레나룻도 정리를 했다.

  12. 나팔수 경주. 나팔수의 빠른 이동과 폐활량, 기량을 겨루는 시합. 지휘관의 명령을 실제 병력에게 전달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수단이 나팔수다. 보통 나팔수는 기수를 겸했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13. 전령 경주. 전장에서의 기본적인 통신 수단, 전령의 이동 속도를 따지는 시합. 전장에서의 빠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은 전쟁의 승리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시합은 격렬했고, 사망자도 많이 발생했다. 경기 종목은 전투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들로 구성되었으며, 각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자들이 대표로 참가했다.
고대 올림픽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각 도시 국가들의 군사력을 비교하고 비교 우위를 검증하는 일종의 군사적, 정치적 시위와도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자, 지금과 같이 과학이 발달하기 전의 고대 그리스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군사력 비교 방법이 올림픽 말고 뭐가 있었겠는가?


애당초 올림픽이란 군사적, 정치적인 목적으로 치러지는 행사였다. 이제 와서 정치색에 물들어 간다고 탄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믿거나, 말거나.

by Fanciski | 2007/12/13 16:33 | 혼돈과 몽상학 | 트랙백 | 덧글(2)
고전 경제와 제품 기안
우리에겐 구세주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경제 학자가 있다.

아담 스미스.

학교를 졸업한 지 1년이 넘어서 생각이 나지 않을지라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사람이 국부론(國富論, The Wealth of Nations, 1776년 저서.)이라는 명저를 남긴 바로 그 아담 스미스다.

대부분의 과학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아담 스미스의 이론에도 그 뿌리가 존재한다. 그것이 '세이의 법칙'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는 사람들에게는 좀 낯선 이름일 것이다.

세이의 법칙(Say's Law)은 장 밥티스트 세이가 제창한 개념이다. '판로설(販路說)'이라고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고전 경제학파의 기둥이라 할 만한 개념이다.

이 법칙은 보통 다음과 같이 요약되곤 한다.

" 생산은 수요를 창출한다. "

누가 뭐래도, 이 말은 마샬 이전의 고전 경제학을 대표하는 명제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옳다는 것을 증명한 실적이 있다. 하지만 다 옛 이야기다. 무턱대고 이 명제를 추종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다.


생산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이야기는 이렇다.

  1. 갑이 만드는 물건의 공급이 늘어난다.
  2. 공급이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더 팔린다.
  3. 더 팔리면 갑은 돈을 더 번다.
  4. 갑은 이렇게 생산량을 늘린 만큼 더 벌어들인 돈을 을에게 쓴다.
  5. 갑이 을에게 쓴 돈은 을의 수입이다.
  6. 을은 갑에게서 벌어들인 돈으로 갑이 만든 물건을 사들인다.
  7. 반복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게 진리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면, 18세기 사람이거나 경험에 대한 인지 쪽에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 명제가 진리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1. 대학 정원이 늘었다.
  2. 대학 졸업생 수가 늘어난 만큼 일자리가 늘어난다.
  3. 일자리가 늘어나면 대학 졸업생들은 취직을 하고 돈을 번다.
  4. 이제 사회 초년생이 된 대학 졸업생들은 번 돈을 사회 생활하는데 쓴다.
  5. 사회 초년생들이 쓰는 돈은 기업의 수입이 된다.
  6. 기업은 수입을 재투자하며 새 일자리를 만든다.
  7. 새 일자리를 충당하기 위해 대학 정원이 늘어난다.
  8. 반복한다.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이런 요즘 세상에 맞지 않는 논지를 아직도 신봉하고 있거나, 신봉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이러한 결정을 순차적으로 내린다.

1 단계.    가장 먼저.
" 뭐든지 만들면 팔린다."
(공급은 수요를 창출하니까?)

2 단계.    그 다음엔.
" 경쟁력이 있어야 팔린다. "
(차별화가 안되면 수요자에게 선택을 못 받으니까? 기술 개발을 한다?)

3 단계.    그리고선.
" 경쟁력은 가격, 싸게 만들어야 팔린다. "
(기술 개발에는 돈이 드니까 생산비를 절감, 가격으로 승부?)

4 단계.    결국은.
" 야근하세요. "
(인건비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최종 단계.    마지막으로.

" 실무진의 제품 개발력이 부족했다. "

글쎄?
by Fanciski | 2007/11/20 10:30 | 사회와 처세술 | 트랙백 | 덧글(2)
달라도 뭔가 다르다.
카~악, 이 밥그릇은 내 거야 ! !


우리들은 종종 말한다.

"역시 히트를 낸 적이 있는 사람은 달라도 뭔가 다르네."
"역시 실적이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야."

이 말은.

"역시 말아먹은 적이 있는 사람은 달라도 뭔가 다르네."
"괜히 말아먹은 게 아니었어."

이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한국의 기업들은 말아먹은 전적이 있는 사람에게 보다 더 크게 말아먹을 기회를 주는 경향이 있다. 이제 슬슬 연봉제 이외의 선진 기업 경영 방식을 도입할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이게 다, 말아먹은 사람은 말아먹을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말아먹은 사람은 더 크게 말아먹을 사람을 알아봐야 한다.

자기보다 더 크게 말아먹을 사람이 많을수록 말아먹은 사람이 생존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래서 말아먹은 사람은 말아먹을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뽑고 중책을 맡겨야 하니까.

by Fanciski | 2007/10/18 10:34 | 미분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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