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22 화덕, 아니면 오븐 [1]
2006/09/27 익히다 2006/08/15 절대 색감을 타고난 사나이 [1] 2006/07/31 CRT, LCD, 그리고 70mm 필름 [4]
화덕, 아니면 오븐.
물론 이런 화덕 이야기가 아니라. ![]() 한국식 화덕의 아름다움. 밥도 짓고 난방도 하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이런 온돌이 아니라, 이런 화덕을 말한다. 보통 오븐(Oven)이라고 부르는 이런 거 말이다. ![]() 이런 것이 오븐. ![]() 이런 것이 스토브. 그냥 오븐과 스토브를 가족 취급하겠다. 모든 음식의 기초가 되는 요리 방법은 굽는 것이며, 굽는 요리법의 기반이 되는 것은 화덕이다. 물론 누구 맘대로 냄비로 끓여내는 것보다 화덕이 더 기본이냐, 우리가 국이나 찌개를 많이 먹지 매 끼니 빵 굽고 고기 굽냐고 한다면 할 말이 많다. 왜냐하면……. 신석기 시대 이전에는 냄비 또는 그와 유사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이 물이 새지 않는 단단하고 흠집이 없는 커다란 바위를 냄비만한 사이즈로 잘 쪼개서 쪼고 갈아서 속에 물을 담을 수 있게 가공해서 불 위에 올려놓은 다음, 그 큰 돌냄비 전체를 충분히 가열할 수 있을만한 양의 장작이나 쇠똥을 그러모을 수 있었다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물을 넣고 끓인다는 발상은 적어도 물이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질그릇을 불에 굽는 기술이 발명된 신석기 시대 이후에나 등장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화덕이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물론 그만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불길이 직접 닿는다는 것은, 음식을 태우기 쉽다는 뜻이다. 음식에 불길이 직접 닿는다는 것은 가열 가능한 온도가 제한된다는 뜻이다. 물론 최고 온도가 아니다. 최저 온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불길이라 할 수 있는 촛불의 최고 온도는 1400도에 달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온도와 총 열량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인트. 일반적인 가정용 연료에서 얻을 수 있는 최저 온도는 대략 600도 정도다. 그리고 우리가 빵을 구울 때 가장 적합한 온도는 대충 200도다. 그럼 600도의 온도를 가진 불길로 빵을 맛있게 구울 수 있겠는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지요. 숯불구이집에 갔을 때와, 석판구이집에 갔을 때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숯불은 끊임없이 불의 세기에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고기를 태우기 십상이지만 석판구이의 경우는 석판이 열을 흡수했다가 적절하게 다시 방출해주기 때문에 온도가 상당히 일정하게 유지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잘 만들어진 오븐은 연료로 유입되는 산소의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불길의 세기까지도 조절할 수 있게 고안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 이렇게 엄하게 생긴 오븐도 잘 보면 오른쪽 뚜껑 쪽에 공기 조절용 장치가 붙어 있다.
불길을 이용해 음식물을 직접 가열한다. 모닥불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뜨거운 가스의 형태로 음식물의 표면을 스치고 지나간다. 스치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음식물에게 열 에너지를 전달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너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고온의 가스가 음식 쪽으로 자신이 가진 열을 모두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다. 사실, 불길을 사용해 음식을 장만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의 열 에너지는 음식으로 전달되지 않고 그냥 뜨거운 가스의 형태로 공기 중으로 퍼져 버린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무조건 고열의 불길을 들이대면 음식은 타버린다. 하지만 음식은 만들어야겠고……. 그래서 아무리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경우에도 불길은 상당히 오랜 시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여기 모닥불이 하나 있다. 그리고 날달걀이 하나 있다. 이걸 깨거나 태워먹지 않고 구우려면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모닥불을 피워놔야 할까?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집에서 가스 랜지, 불꽃 1개의 화력으로 오징어를 구워보라. 대충 1분 걸릴 것이다. 가스 요금은……. 대충 100원어치 나왔다고 하자. 그리고 이번에는 불꽃 3개의 화력으로 오징어를 구워본다.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단축될까? 정말로 최대 화력에서 오징어를 구우려고 했다간 오징어를 불꽃에서 멀리 떨어지게 해서 굽지 않는 이상 아마 구워지기보다는 시커멓게 타버릴 것이다. 물론 오징어를 불꽃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면 당연히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게 된다. 역시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연료 소비량도 늘어나게 될 것이고……. 좀 더 직설적으로 살펴보자. 휴대용 가스렌지(속칭 부루스타) 가스통 1개 가지고 전골 2 그릇 정도 해먹을 수 있다. 전골 2 그릇에 들어가는 식재료의 양은 넉넉잡고 6kg. (물 포함) 전골 냄비 내부의 온도는 당연하게도 올라가봤자 110도. (물론 소금물이 졸아들었을 때의 염분 농도 상승에 의한 비등점 상승을 고려하라, 는 의견도 있겠으나 그 정도가 되면 음식이라고 볼 수 없다.) 부탄 가스 1통의 열량은 대략 2400kcal. 대충 산수로 따져도 물 20 리터는 거뜬히 끓일 수 있는 양. 아까 위에서 정한 식재료의 양은 6kg. 그럼 나머지 14kg을 덥힐 열량은 어디로 가나? 다 헛되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한편.
화덕의 경우, 장작이나 연탄 등 연료가 방출하는 600~900도에 달하는 뜨거운 열을 흡수했다가 필요한 만큼 낮은 온도로 장시간 방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잘 설계된 벽돌 화덕의 경우, 200도에서 300도 사이의 온도를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 넘게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음식의 아래쪽 뿐만 아니라 위쪽, 그리고 속에까지 골고루 잘 익혀진다. 어떻게 열 에너지를 저렇게 효율적으로 방출하면서 음식까지 골고루 익힐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한 공로로 한 독일계 유태인이 노벨상을 탔을 정도니, 5차 교육 과정 이전 세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6차 교육 과정 이후에는 고교 교과서에도 이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이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더라도 정상적인 고교 교육을 받은 네티즌 세대라면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거 설명하자면 끝이 없다. 정 궁금하면 양자역학 입문서의 초반부, 오븐 내의 에너지 총량을 계산하는 문제에 대한 항목을 보면 잘 해설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화덕 자체를 덥히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상당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 잘 덥혀진 화덕은 불을 이용해 직접 음식을 가열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효율로 많은 양의 음식을 덥힐 수 있고, 이는 연료를 구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옛날에는 훌륭한 조리기구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었음에 틀림 없다. 하지만 화덕의 경우, 고열의 가스를 화덕 내부에 가능한 한 오래 모아둘 수 있으며, 가스가 모여있는 공간 내부의 온도는 상당한 고온으로 잘 유지가 된다. 덕분에, 불길이 직접 닿는 음식의 아래쪽 뿐만 아니라 위쪽도 잘 익힐 수가 있다. 하여간 오븐이 음식을 어떻게 익히는가, 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한 번 더 고찰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이런 벽돌 오븐에 대해서 논하는 것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전기 오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게 실용성 면에서는 확실히 더 나을 터.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당신은 소똥 타는 불길에 오징어를 구워 먹을 용기가 있는가? 소나무 장작에서 나는 송진 냄새, 불쏘시개로 쓰는 나뭇잎 냄새, 연탄에서 나는 유황 냄새, 코가 찡해지는 등유 냄새, 실수로 섞여 들어간 옻의 냄새……. 연료의 냄새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오븐이 가지는 이점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뭐, 이건 극단론이겠고, 어쨌거나 실제로 직접 불길로 굽는 요리를 하는 데 쓸 수 있는 연료의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식자재 고유의 냄새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보면, 굽는 요리에 쓸 수 있는 천연 연료는 숯 밖엔 없다. 물론 산업 혁명 이후 냄새가 나지 않는 가스라는 새로운 연료가 추가되었지만, 가스도 오븐을 가열하기 위한 훌륭한 연료인 만큼 가스의 등장으로 인하여 오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연료를 채워 넣고, 불을 당겨 한참 뜨겁게 데운 다음 재를 긁어내고서 요리할 음식을 넣게 된다. 이것은 요즘 만들어진 오븐도 마찬가지다. 불은 아래쪽 또는 위쪽에서 태우지만 음식을 넣는 공간은 별도의 밀폐된 공간으로 따로 제공된다. 이것은 단순히 열이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븐 안이 밀폐가 되면, 열효율을 올리는 것 이외에 음식을 덜 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겨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밀폐 공간이니까 화덕 안에 남아 있는 산소가 소모되고 나면 더 이상 태우고 싶어도 태우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완전 밀폐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음식이 타지만 적어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고 직접 불을 당기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편이다. ![]() 국내 모 보일러 업체의 거꾸로 타는 보일러라는 개념 이거 그다지 신기한 거 아니다. 하여간 이것도 위에서 불을 때고 아래쪽에서 익히는 스타일.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실내에서나 야외에서나 믿을 수 있는 조리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오븐. 어떤가? 오븐이란 알고 보면 정말 좋은 조리 기구다. 따뜻하고 씻을 필요도 없고 덩치도 커서 한 대 들여 놓으면 뿌듯하고 뽀대있고 뭔가 이것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을 거 같고. 따라서, 신규 분양되는 아파트를 구입할 때에는 식기 세척기보다 오븐을 선택해보는 것이 어떨까? 결론이 이상하다고? 애당초 뾰족한 결론을 내자고 쓴 글이 아닌데……. ![]() Panasonic DMC-LX1, F 2.8, 1/6 sec, ISO 80 익히다 익―히다[이키―][타동사] 【‘익다’의 사동】 1. 날것을 뜨거운 기운으로 익게 하다. ¶ 날밤을 잿불에 묻어 알맞게 익히다. 2. 빚거나 담근 음식물이 제 맛이 들게 하다. ¶ 잘 익힌 동동주. 3. 익숙해지도록 하다. ¶ 일을 익히다. 오늘의 테마는 1. 날것을 뜨거운 기운으로 익게 하다, 가 되겠다. 불의 발명과 더불어, 인류는 음식을 익혀 먹는다는 개념을 새롭게 창출해냈다. 기본적인 개념은 음식 재료에 열을 가하여 탄수화물 및 단백질 조성을 변성(變性, denaturation)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대부분의 과정은 수소결합에 의하여 발생하는데……. 이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거나 음식을 익히는 방법의 기본은 가열이다. 직접 불에 굽든, 끓는 물에 넣어서 삶든, 찌든, 뭘 어떻게 하던 결국 식재료를 가열한다는 기본 개념은 동일하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의 조리 방법은 어떻게 하면 열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빨리 식재료에 전달하고 침투시키는가, 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래서……. 한 동안은 조리 기구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과학적인 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순수한 상상과 추측에 의거한 내용으로 말이다. PS. 물론, 관련 정보에 대한 좋은 서적이나 사이트를 알고 계신 분께서
정보를 주신다면 감사히 반영토록 하겠다. 하지만 그런 심성을 가진 분이 이런 곳까지 찾아올 가능성은 낮다. ![]() Marc Chagall, 1915, 'The Birthday' ※ 이 글은 CRT, LCD, 그리고 70mm 필름이란 제목의 포스팅과 관련이 있다. 예술 혼을 불사르는 사람의 눈은 대략 천만 가지 이상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 대략 200만 가지 정도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색을 보는 방법은 디지털 카메라와는 많이 다르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1개의 센서가 명암과 색상을 동시에 측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센서란, CCD 상의 1개 화소(畵素)를 말한다. 또한, 1개 센서가 RGB 값을 동시에 측정한다는 뜻도 아니다. 물론 안 그런 센서도 있다. 나중에 설명할지는 모르겠지만, 후지 필름에서 제작하는 허니컴 SR2 소자(DC 인사이드 참조)의 경우 독자적인 괴상한 구조를 채택하여 요상한 기능을 가능케 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R, G, B 채널 당 8~16비트 단계(최대 95536 단계) 밝기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3개씩 1조를 이루어 1개의 화소 역할을 수행한다. (정확히는 각각의 센서는 명암 값만 기록하는 셈이지만, 해당 센서가 받아들인 정보가 무슨 색인지에 대해서는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원래의 색상에 근접한 결과 값을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16비트 3채널을 사용한 데이터를 그대로 저장하기에는 너무 용량이 크기 때문에 보통 8비트 3채널 JPG 등으로 변환해서 저장하게 된다.) 저장된 결과물을 놓고 보면, 8비트 단계 3채널이 되니까 2의 24승, 대략 1600만 가지 색상을 디지털 카메라는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눈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특정 색상에 대해 8~16비트 단계의 명암 단계를 가지는 카메라와는 달리, 인간의 눈은 여러 가지 센서가 서로 제각기 동작한 결과물을 가지고 보게 된다. 사람의 눈을 구성하는 촬상 소자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어두운 곳에서는 주로 간상체가 동작하며, 밝은 곳에서는 주로 추상체가 동작한다. 물건의 형태와 이동을 인식하는 것은 간상체가 담당하며, 색상은 추상체가 담당한다. 이렇게 서로 역할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는 물건의 색깔이 보이질 않고, 너무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물체의 이동이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착시 현상이 쉽게 발생한다.) 게다가, 감지된 결과물은 RGB 형태로 뇌에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눈이 느끼는 색상 정보는 간상체에서 느끼는 흑백 정보(B/W 채널), L-M 추상체 간의 상대적 명암 차에서 비롯되는 적록 정보(R/G 채널), M-S 추상체 간의 상대적 명암 차에서 비롯되는 황청 정보(Y/B 채널)의 형태로 전달된다. 채도에 대한 정보는 R/G 채널과 Y/B 채널의 신호 크기에 따라서 결정된다. 디지털 카메라와는 많이 다르고, Photoshop이나 3D MAX에서 다루는 색상 모델과도 많은 차이가 있다. 어쨌든, 사람의 경우 구분 가능한 명도 단계는 대략 450~500 단계 정도다. (대략 9 비트) 색상 단계는 150~200 단계. (많이 봐줘도 8 비트) 채도 단계는 약 20 단계. (정말 많이 봐줘서 5 비트) 대략 400만 가지 정도가 되겠다. (덤을 안 주고 그냥 계산할 경우 200만) 와, 400만이면 훌륭하지 않은가? 천만의 말씀. 채도를 구분하는 능력은 대략 20단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목표 색상을 둘러 싸고 있는 주변 색상, 명암 등을 놓고 채도를 추측하는 것이지, 실제로 그 색상의 정확한 채도 값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자, 사설이 굉장히 길었다. 하지만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서,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사실은 인간 뇌의 처리 능력 한계에 대해서 논하고 싶지만 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터부시 되고 있기 때문에 접어 둔다.) 인간 눈을 구성하는 시신경 개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의 한쪽 눈에는 대략 1억 개의 간상체와 300만 개의 추상체가 자리잡고 있다. 단순 합산으로는 1억 300만 개. 하지만 유효 화소 수란 개념으로 본다면 대략 1억 개 정도의 시신경이 활동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와, 무려 1억 화소! 대단하지 않은가? 가로 세로 1만 픽셀 해상도를 가진 디지털 카메라!? 정말로 고급스런 디지털 카메라이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모니터가 보통 1600 * 1200 = 192만 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정밀도를 가지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600 * 1200 해상도를 가지는 모니터 상에서 7% 정도 발생한 왜곡을 인지를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계산해보자. 대략 7% 정도의 왜곡을 인지를 못한다는 것은 오차 범위가 7% 정도에 달한다는 뜻이라고 봐야 한다. (7%가 최소 오차인지 최대 오차인지에 대한 논의는 접어 두도록 하자, 일단은 7%가 최대 오차라 생각하고 계산을 해보도록 한다.) 192만 화소에 대한 7% 오차는 134,400 화소. 1억 화소에 대한 7% 오차는 700만 화소. 그런데, 이 700만 개의 시세포가 사실은 형태 구분에 도움이 되는 간상체가 아니라 색상 구분에 도움이 되는 추상체라면? 정상 추상체 수 300만 개. 7% 오차에서 추가된 추상체 수 700만 개. 그 결과는? 보통 사람의 3배에 달하는 추상체를 가진 사람? 앞서 언급했던 색상 단계 구분 능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모든 능력이 세포 수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할 경우, 늘어난 추상체 수는 색각 능력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면 색상 단계는 150~200에서 3배로 늘어난 350~600 단계. (정말 많이 봐줘서 10 비트) 채도 단계는 약 20 단계에서 60 단계. (약 6 비트) 다시 계산해보면, 700만 개의 추가 추상체를 가진 사람이 구분할 수 있는 색상 단계 수는? 무려 1천 800만 가지! 24bit true color를 능가하는 진정한 색각(錯覺) 능력자! 보통 사람이 200만 가지 색상을 구분할 수 있는데 반해서, 이런 사람들은 그에 비하여 무려 9배나 정확한 색감을 가진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색감이라면……다른 모든 단점들은 다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 멋진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꼭 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당신 주변에 세상을 뒤집어 놓을 천재적인 화가가 무더기로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상상이다. 물론 위의 가정들은 다 한낱 가정들일 뿐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인 발상이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항상 예외란 존재하는 법이 아닌가. 지금 당신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미래의 세계적 예술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모르는 일이다, 정말 7%의 오차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엄청난 재능이 숨어 있다고 한다면, 지금 아무 생각 없이 CD-ROM에 담아둔 그 사람의 형이상학적 3D MAX 모델링 데이터 1개가, 100년 뒤에 소더비 경매장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될지도?
회사 안을 방황하다 보면, 종종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바로 CRT(브라운관, 이하 CRT로 통칭한다.) 모니터 화면 비율을 5:4로 맞춰 놓고 쓰는 사람들과, 이것을 문제 삼는 행위 자체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사실, CRT에서 극적인 화면 왜곡 없이 5:4 비율을 볼 수 있는 해상도는 오직 하나 뿐이다. 1280*1024 모드. 화면 비율은 1280:1024 = 5:4. 그럼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화면 비율들을 알아보자. PC 모니터 4:3 비율이 표준이다. 보통 지원되는 해상도는 이렇게 된다.
LCD, 액정 모니터의 경우는? 다양한 해상도가 있다. 처음부터 유리로 된 브라운 관을 뽑아내야 하는 CRT와는 달리, 액정 모니터는 거대한 유리에 그려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해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CRT 모니터에서 쓰는 해상도 이외에, 다음과 같은 해상도가 추가로 존재한다.
TV의 경우
(믿어지지 않으신다고? 집에 가셔서 TV 화면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포토샵에서 확대해 보길 바란다. 집에 확대경이 있으면 직접 봐도 좋다. 디지털 카메라를 권장하는 이유는……단순히 요즘 사람들 보면 집에 확대경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초 과학은 역시 죽었나…….) 어쨌든 TV는 화소 간의 위치 관계가 PC 모니터랑은 애당초 다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날로그 전파로 데이터를 송출하는 TV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인데 어쨌든 거기까지 다루긴 좀 그렇고…….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해서 요즘 팔리는 TV는 704*480 화면 비율에 준하는 해상도를 가지지만 픽셀 자체의 배치가 다르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는 화면의 일그러짐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옛날에는 이게 TV 화면이 모니터보다 더 밝게 보이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같은 면적에서 보다 많은 화소 수를 가지기 때문에 당연히 밝기 문제에서 TV가 모니터를 앞질러 가게 되는 것이다. 뭐 해상도 문제만 놓고 따졌을 때 그런 것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극장. 한 때 70mm 필름을 이용한 16:9 와이드 스크린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다. 요즘은 2:1 비율이 대세로 판단된다. (매트릭스 이후 갑자기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쨌거나 사람 눈이 양쪽으로 달렸으니 좌우 2:1 화면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이 정도로 해두고 일단 정리를 해보자.
일반적인 LCD는 1280*1024 = 5:4 해상도와 화면비를 가진다. (적어도 데스크탑 용으로 공급되는 LCD 모니터는 거의 예외가 없다. 특별히 와이드 LCD를 주문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생각해보자. 극장에서 보는 2:1 와이드 화면을, 일반 PC의 4:3 화면에다 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좌우로 압축되어서 캐릭터들이 위아래로 길쭉하게 나올 것이다. (특별히 화면 비율을 지키기 위해 위아래로 검게 여백을 남기지 않는 한 말이다.) 스타크래프트를 5:4 비율을 가진 LCD에서 전체 화면 모드로 하면 어떻게 될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자체는 640*480 = 4:3 화면 비율을 가지고 있다. 그걸 5:4 에다 때려 맞춰야 하니, 당연히 화면이 위아래로 약간 늘어나서 보이게 된다. 자, 그럼 5:4 비율을 가진 LCD 모니터에서 정사각형을 그린 다음, 그 데이터를 4:3 비율을 가진 CRT에서 재생한다고 하자. 어떻게 될까?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왜냐, LCD 모니터는 애당초 5:4 화면 비율에 맞도록 물리적인 크기 자체가 CRT와는 다르게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TV처럼 각 화소간의 거리를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각 화소 간의 거리가 완전히 고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원본 영상의 도트와 디스플레이의 도트를 1:1로 매치시킬 경우 왜곡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LCD의 경우 모니터가 지원하는 최대 해상도 모드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PC에서도 모든 물체들이 정확한 비율을 가지고 보여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물리적으로 4:3 비율을 가진 CRT에서 5:4 비율을 가진 화면 해상도를 세팅하고 작업을 한 결과물을 물리적으로 4:3 비율을 가진 CRT에서 4:3 비율을 가진 화면 해상도를 세팅 후 감상할 경우의 결과는? 보다 쉽게 풀어 써주겠다.
절대 나오지 않는다. 대충 7% 정도 위아래로 늘어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왜냐? 물리적으로 4:3 비율을 가진 CRT에다 5:4 비율 화면 해상도를 세팅하는 행위 자체가 시각적으로 화면을 위 아래로 저만큼 압축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 영상물 제작에서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눈썰미가 뛰어난 작업자들은 이런 식으로 왜곡이 발생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런 일이 게임 제작 현장에서 발생하게 되면,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다. "게임 안의 캐릭터나 오브젝트가 어쩐지 좀 위아래로 길어 보이는데요?" 유저들의 저런 질문에 대체 뭐라고 대답할 생각인가. 설마 진심으로 '적응하세요' 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하지만 세상은 넓은 법, 가끔 진심으로 ‘적응하라’, ‘사람 눈은 원래 어중간하다’는 식의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7.5등신 캐릭터나 8등신 캐릭터나 마찬가지로 보인다는 눈을 가지셨으니 참, 그래픽 작업자로 먹고 사시기에 참 애로사항이 꽃피시겠구료." P.S.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상한 상관 관계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바로, 화면 왜곡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모니터 간의 색상 차이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모니터 화면의 왜곡은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자기 모니터와 다른 사람 모니터와의 색감 차이는 칼같이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보았는데……. 그것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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