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 아니면 오븐
화덕, 아니면 오븐.

물론 이런 화덕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식 화덕의 아름다움. 밥도 짓고 난방도 하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이런 온돌이 아니라, 이런 화덕을 말한다.
보통 오븐(Oven)이라고 부르는 이런 거 말이다.

이런 것이 오븐.



이런 것이 스토브. 그냥 오븐과 스토브를 가족 취급하겠다.



모든 음식의 기초가 되는 요리 방법은 굽는 것이며, 굽는 요리법의 기반이 되는 것은 화덕이다.

물론 누구 맘대로 냄비로 끓여내는 것보다 화덕이 더 기본이냐, 우리가 국이나 찌개를 많이 먹지 매 끼니 빵 굽고 고기 굽냐고 한다면 할 말이 많다. 왜냐하면…….

신석기 시대 이전에는 냄비 또는 그와 유사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이 물이 새지 않는 단단하고 흠집이 없는 커다란 바위를 냄비만한 사이즈로 잘 쪼개서 쪼고 갈아서 속에 물을 담을 수 있게 가공해서 불 위에 올려놓은 다음, 그 큰 돌냄비 전체를 충분히 가열할 수 있을만한 양의 장작이나 쇠똥을 그러모을 수 있었다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물을 넣고 끓인다는 발상은 적어도 물이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질그릇을 불에 굽는 기술이 발명된 신석기 시대 이후에나 등장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화덕이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물론 그만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 · 온도 조절이 용이하다.

음식에 불길이 직접 닿는다는 것은, 음식을 태우기 쉽다는 뜻이다.

음식에 불길이 직접 닿는다는 것은 가열 가능한 온도가 제한된다는 뜻이다. 물론 최고 온도가 아니다. 최저 온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불길이라 할 수 있는 촛불의 최고 온도는 1400도에 달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온도와 총 열량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인트.
일반적인 가정용 연료에서 얻을 수 있는 최저 온도는 대략 600도 정도다. 그리고 우리가 빵을 구울 때 가장 적합한 온도는 대충 200도다. 그럼 600도의 온도를 가진 불길로 빵을 맛있게 구울 수 있겠는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지요.

숯불구이집에 갔을 때와, 석판구이집에 갔을 때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숯불은 끊임없이 불의 세기에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고기를 태우기 십상이지만 석판구이의 경우는 석판이 열을 흡수했다가 적절하게 다시 방출해주기 때문에 온도가 상당히 일정하게 유지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잘 만들어진 오븐은 연료로 유입되는 산소의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불길의 세기까지도 조절할 수 있게 고안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엄하게 생긴 오븐도 보면 오른쪽 뚜껑 쪽에 공기 조절용 장치가 붙어 있다.


  • · 연비가 높다.

불길을 이용해 음식물을 직접 가열한다.
모닥불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뜨거운 가스의 형태로 음식물의 표면을 스치고 지나간다.
스치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음식물에게 열 에너지를 전달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너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고온의 가스가 음식 쪽으로 자신이 가진 열을 모두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다. 사실, 불길을 사용해 음식을 장만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의 열 에너지는 음식으로 전달되지 않고 그냥 뜨거운 가스의 형태로 공기 중으로 퍼져 버린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무조건 고열의 불길을 들이대면 음식은 타버린다. 하지만 음식은 만들어야겠고…….

그래서 아무리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경우에도 불길은 상당히 오랜 시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여기 모닥불이 하나 있다. 그리고 날달걀이 하나 있다.
이걸 깨거나 태워먹지 않고 구우려면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모닥불을 피워놔야 할까?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집에서 가스 랜지, 불꽃 1개의 화력으로 오징어를 구워보라. 대충 1분 걸릴 것이다. 가스 요금은……. 대충 100원어치 나왔다고 하자. 그리고 이번에는 불꽃 3개의 화력으로 오징어를 구워본다.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단축될까?
정말로 최대 화력에서 오징어를 구우려고 했다간 오징어를 불꽃에서 멀리 떨어지게 해서 굽지 않는 이상 아마 구워지기보다는 시커멓게 타버릴 것이다. 물론 오징어를 불꽃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면 당연히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게 된다. 역시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연료 소비량도 늘어나게 될 것이고…….

좀 더 직설적으로 살펴보자.

휴대용 가스렌지(속칭 부루스타) 가스통 1개 가지고 전골 2 그릇 정도 해먹을 수 있다. 전골 2 그릇에 들어가는 식재료의 양은 넉넉잡고 6kg. (물 포함) 전골 냄비 내부의 온도는 당연하게도 올라가봤자 110도. (물론 소금물이 졸아들었을 때의 염분 농도 상승에 의한 비등점 상승을 고려하라, 는 의견도 있겠으나 그 정도가 되면 음식이라고 볼 수 없다.) 부탄 가스 1통의 열량은 대략 2400kcal. 대충 산수로 따져도 물 20 리터는 거뜬히 끓일 수 있는 양. 아까 위에서 정한 식재료의 양은 6kg. 그럼 나머지 14kg을 덥힐 열량은 어디로 가나?

다 헛되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한편.

  1. 화덕 안에 장작을 채워 넣고 불을 지핀다.
  2. 장작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타오르고, 이와 함께 화덕 안도 빨갛게 달아오른다.
  3. 불길이 잦아들면 재를 긁어낸다.
  4. 식빵 반죽을 비롯하여 로스트 비프에 탄두리 치킨까지 골고루 밀어 넣는다.
  5. 세월아 내월아 기다리면 구워지고 익혀진다.

화덕의 경우, 장작이나 연탄 등 연료가 방출하는 600~900도에 달하는 뜨거운 열을 흡수했다가 필요한 만큼 낮은 온도로 장시간 방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잘 설계된 벽돌 화덕의 경우, 200도에서 300도 사이의 온도를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 넘게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음식의 아래쪽 뿐만 아니라 위쪽, 그리고 속에까지 골고루 잘 익혀진다.

어떻게 열 에너지를 저렇게 효율적으로 방출하면서 음식까지 골고루 익힐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한 공로로 한 독일계 유태인이 노벨상을 탔을 정도니, 5차 교육 과정 이전 세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6차 교육 과정 이후에는 고교 교과서에도 이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이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더라도 정상적인 고교 교육을 받은 네티즌 세대라면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거 설명하자면 끝이 없다.
정 궁금하면 양자역학 입문서의 초반부, 오븐 내의 에너지 총량을 계산하는 문제에 대한 항목을 보면 잘 해설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화덕 자체를 덥히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상당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 잘 덥혀진 화덕은 불을 이용해 직접 음식을 가열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효율로 많은 양의 음식을 덥힐 수 있고, 이는 연료를 구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옛날에는 훌륭한 조리기구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었음에 틀림 없다.


하지만 화덕의 경우, 고열의 가스를 화덕 내부에 가능한 한 오래 모아둘 수 있으며, 가스가 모여있는 공간 내부의 온도는 상당한 고온으로 잘 유지가 된다. 덕분에, 불길이 직접 닿는 음식의 아래쪽 뿐만 아니라 위쪽도 잘 익힐 수가 있다.

하여간 오븐이 음식을 어떻게 익히는가, 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한 번 더 고찰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이런 벽돌 오븐에 대해서 논하는 것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전기 오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게 실용성 면에서는 확실히 더 나을 터.



  • · 연료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당신은 소똥 타는 불길에 오징어를 구워 먹을 용기가 있는가?




소나무 장작에서 나는 송진 냄새, 불쏘시개로 쓰는 나뭇잎 냄새, 연탄에서 나는 유황 냄새, 코가 찡해지는 등유 냄새, 실수로 섞여 들어간 옻의 냄새…….
연료의 냄새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오븐이 가지는 이점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뭐, 이건 극단론이겠고, 어쨌거나 실제로 직접 불길로 굽는 요리를 하는 데 쓸 수 있는 연료의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식자재 고유의 냄새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보면, 굽는 요리에 쓸 수 있는 천연 연료는 숯 밖엔 없다. 물론 산업 혁명 이후 냄새가 나지 않는 가스라는 새로운 연료가 추가되었지만, 가스도 오븐을 가열하기 위한 훌륭한 연료인 만큼 가스의 등장으로 인하여 오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 · 태우지 않는다.
오븐의 구조를 생각해 보자.
보통 연료를 채워 넣고, 불을 당겨 한참 뜨겁게 데운 다음 재를 긁어내고서 요리할 음식을 넣게 된다.
이것은 요즘 만들어진 오븐도 마찬가지다. 불은 아래쪽 또는 위쪽에서 태우지만 음식을 넣는 공간은 별도의 밀폐된 공간으로 따로 제공된다.

이것은 단순히 열이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븐 안이 밀폐가 되면, 열효율을 올리는 것 이외에 음식을 덜 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겨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밀폐 공간이니까 화덕 안에 남아 있는 산소가 소모되고 나면 더 이상 태우고 싶어도 태우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완전 밀폐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음식이 타지만 적어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고 직접 불을 당기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편이다.


국내 보일러 업체의 거꾸로 타는 보일러라는 개념 이거 그다지 신기한 아니다.

하여간 이것도 위에서 불을 때고 아래쪽에서 익히는 스타일.




  • · 주변 조건의 영향을 덜 받는다.
마지막으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실내에서나 야외에서나 믿을 수 있는 조리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오븐.




어떤가?

오븐이란 알고 보면 정말 좋은 조리 기구다.

따뜻하고 씻을 필요도 없고 덩치도 커서 한 대 들여 놓으면 뿌듯하고 뽀대있고 뭔가 이것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을 거 같고.

따라서, 신규 분양되는 아파트를 구입할 때에는 식기 세척기보다 오븐을 선택해보는 것이 어떨까?




결론이 이상하다고?

애당초 뾰족한 결론을 내자고 쓴 글이 아닌데…….
by Fanciski | 2006/11/22 14:32 | 잡학과 박물학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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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근엄 at 2006/11/24 21:07
집에 오븐은 있긴 한데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전설이...
본가에서도 입주이래 5년간 오븐을 단 한 번도 안썼고
분가후에도 마찬가지. 오븐은 확실히 좋은 조리장치지만
주로 끓여먹거나 지져먹는 식생활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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