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밀리고 밀린 와인 견문록.
난 와인 초보자고 순수히 내 미각에 의존하여 평가할 뿐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와인 찬미자들의 의견대로 내 미각은 스위트 쪽으로 상당히 아주 많이 대체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게다가 돈도 없다. 따라서 와인 맛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본다.

일단 마신 순서대로 챙겨보자.


Inniskillin Vidal Oak Aged 2004
캐나다산 아이스바인. 품종 비달. 알코올 12.5%

아시는 분이 선물 받은 캐나다산 아이스와인이다. 국내에도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대략 20만원대 인 듯 하다. (백화점 가격) 딸 때 옆에서 구경하다가 반 잔 얻어 마셨다.

감상은…….

돈이 좋긴 좋구나!!

황금색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의 그 부드러운 넘김과 달콤쌉싸름한 맛의 조화는 이하 생략한다.
하여간 좋다. 알코올 도수도 12.5도 정도로 적당하고 향기도 향긋한데다 하여간 좋다. 근데 양은 참 적다. 내 돈 주고 사서 마시기에는 좀 아깝다.

이름은 이니스킬린, 이라고 읽는다.

다 좋은데 친척 분들은 이걸 닭도리탕하고 같이 드셨다.


Les Corioles Sichel 2004
프랑스산 레드 와인. 품종 시쉘(?). 알코올 12.5%(?)


아마 르 코리올리 시쉘, 이라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시는 분이 프랑스에서 사오신 와인이다. 무슨 품종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저 시쉘이 메이커 이름 메종 시쉘인지 품종명인지도 병을 버려버린 지금은 알 길이 없다. 국내 와인 샵에서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그래도 시쉘이라면 나름 선물할 정도의 물건이니 괜찮은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따는 순간부터 충격이 계속되었다.

무려 고무 마개가 아닌가.
우레탄이라고도 한다.

코 끝에 퍼지는 산뜻한 산미.
한 모금 물었을 때 입 안으로 번져 나가는 조금 시큼한 듯 하면서도 우아한 맛.
목 뒤로 넘어갈 때의 존재감.

일반적인 와인 분석가라면 저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와 친척분이 느끼신 감상은 이랬다.

뚜껑만 따도 느껴지는 톱밥 냄새.
입 안에 머금은 순간 정수리를 관통하는 시큼텁텁한 맛.
삼켰을 때 온 몸으로 퍼져 나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감.
마시고 나서 15분은 계속되는 입 안의 텁텁함, 꺼끌함.

개수대로 직행했다.

와인이 변질되었을 공산이 크다고 본다. 냉장고 위에 근 1년간 방치했었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혐오스런 맛을 보여줄 수가 있는 걸까. 식초가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원래의 풍미를 조금은 간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터인데……. 어쨌든 버렸다.


Muscat de Mireval, Domaine du Mas Neuf
프랑스산 화이트 와인. 머스캇 품종. 알코올 15.5%


역시 화이트 와인, 역시 머스캇.
내가 아는 게 저것 밖에는 없다.

적절하게 달콤한 향기, 달콤한 풍미, 화끈한 알코올. (15.5%)
와인보다는 빼갈과 소주를 즐기시는 분께서도 나름 마실만하다고 하신 걸 보면, 확실히 스위트 계열의 화이트 와인이 가지는 범용성은 대단하다. Late Harvest 2002와 더불어 남들에게 안심하고 권할만한 물건이다. 사실 맛은 Late Harvest 2002 쪽이 더 낫지만 가격과 양은 이 Muscat de Mireval의 승리.

Late Harvest 2002와 진지하게 비교하자면, 향과 맛은 이쪽이 더 강하지만 과유불급, 좀 지나친 감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Muscat de Samos처럼 지나친 것은 아니니 괜찮은 편. 게다가 Muscat de Samos는 취급하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이건 조금만 수고하면 대형 마트 등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분명 용기는 750ml로 표준 사이즈인데 어째 맛은 디저트 와인이다.


La Joya Carmenere, 2003
칠레산 레드 와인. 까르미네르 품종. 알코올 14%(?)


라 호야 까르미네르. 병 옆에 보면 무슨 무슨 상을 탔다는 둥 잘났다는 둥 많이 써 있다.
맛은 멜롯스럽다. 약간 텁텁한 맛. 중량감은 멜롯보다 이쪽이 좀 가벼운 느낌이다. 어쨌든 별로 맛은 없다. 고기나 기름진 크림 파스타 같은 것을 먹을 때 같이 마시면 기름기를 가시는 데 아주 쓸만할 것 같다. 텁텁하고 좀 쓴 맛이 나고 코르크 냄새가 강하긴 해도 그걸로 인한 거부감이 심한 것은 아니니까.

진미 오징어랑 같이 먹어본다.
맥주와 오징어가 어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잘 어울린다.

근데 나처럼 저녁에 퇴근하고 한 잔 약 삼아서 마시는 사람한테는 그다지 권할 건 못 되는 것 같다. 피곤해서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마시는 와인에게서 인생의 쓴 맛을 배워서 어쩌겠는가.


Castel Cabernet Sauvignon, 2004
프랑스산 레드 와인. 까르비네 소비뇽. 알코올 12.5%


귀동냥 천만냥 소문으로만 듣던 까르비네 소비뇽이란 품종을 시도했다.

뭔가 느슨한 멜롯?
멜롯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축 늘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이다. 물론 이런 걸 두고 조화,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조화는 아니다.

이래저래 불만은 많지만 그래도 있으면 마실만한 물건이긴 하다.
치즈랑 같이 홀짝홀짝 마시면 나름 괜찮았다.

이거 마시다가 디켄팅이라는 거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에 걸쳐 마셨는데 조금씩 맛이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중간에 감기가 걸려서 한 일주일 냉장고에 방치했다가 다시 맛을 보니 인생의 신 맛이 느껴졌다. 결국은 300ml 가까이 하수구에 사는 악어만 호강시켰다.


Boone's Sangria, 2005
미국산 레드 와인. 혼합. 알코올 6.5%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저렴한 혼합주, 칵테일 음료, 저알콜. 뚜껑조차 양철 뚜껑이다.

느낌은 거의 스파클링 음료. 실제 탄산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포도주라기보다는 시원한 과일주스라는 느낌.
어쨌든 심심할 때 심심하게 마시기에 좋을 것 같다.
알코올 도수도 낮으니 차갑게 식혀서 얼음 넣고 맥주처럼 들이키면 시원할지도? 가격도 저렴하니 벌컥벌컥 들이켜도 괜찮을 성 싶기도 하다.

잠시 값이 싼 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무시할 것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와인은 아니다. 그냥 마실 것.



여기까지 쓰고 보니 뭔가 아이스바인 1병, 멜롯 1병을 어딘가 팔아먹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수녀님 그림이 그려진 화이트 와인 2병도 분명 내 목구멍을 지나간 것 같은데 역시 사진이 안 보인다.

가끔은 컴퓨터 자료 폴더 정리도 해야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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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ciski | 2006/10/24 14:20 | 와인과 식당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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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근엄 at 2006/10/26 19:05
오옹... 이니스킬린 비달 아이스와인. 대한항공 기내 면세품 카탈로그에 국내 시중 판매가 20만원대라고 써져있던데 정말 그런가보군요. 면세로는 6만원대에 팔고 있었습니다. 시셸은 메이커명입니다. 품종은 프랑스 와인같은 경우 알자스 지방을 제외하면 대부분 써져있지 않은데다가 (일부는 백레이블의 설명에 작게 써져 있는 수도.) 2종 이상을 블렌딩 하는 경우도 많아서 아무래도 알기 어렵지요.

생산지명이라도 알면 추측은 해볼 수 있을지도... 부르고뉴 지방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레드는 피노누아100% 화이트는 샤르도네100% (또는 드물게 알리고테)로 만들고 보르도 같으면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남부지방 같으면 쉬라나 그르나쉬 뭐 이런 식으로 주력 품종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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