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색감을 타고난 사나이
당신도 어쩌면 100년 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릴지 모른다.
Marc Chagall, 1915, 'The Birthday'

※ 이 글은 CRT, LCD, 그리고 70mm 필름이란 제목의 포스팅과 관련이 있다.


예술 혼을 불사르는 사람의 눈은 대략 천만 가지 이상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 대략 200만 가지 정도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색을 보는 방법은 디지털 카메라와는 많이 다르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1개의 센서가 명암과 색상을 동시에 측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센서란, CCD 상의 1개 화소(畵素)를 말한다. 또한, 1개 센서가 RGB 값을 동시에 측정한다는 뜻도 아니다. 물론 안 그런 센서도 있다. 나중에 설명할지는 모르겠지만, 후지 필름에서 제작하는 허니컴 SR2 소자(DC 인사이드 참조)의 경우 독자적인 괴상한 구조를 채택하여 요상한 기능을 가능케 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R, G, B 채널 당 8~16비트 단계(최대 95536 단계) 밝기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3개씩 1조를 이루어 1개의 화소 역할을 수행한다.

(정확히는 각각의 센서는 명암 값만 기록하는 셈이지만, 해당 센서가 받아들인 정보가 무슨 색인지에 대해서는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원래의 색상에 근접한 결과 값을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16비트 3채널을 사용한 데이터를 그대로 저장하기에는 너무 용량이 크기 때문에 보통 8비트 3채널 JPG 등으로 변환해서 저장하게 된다.)

저장된 결과물을 놓고 보면, 8비트 단계 3채널이 되니까 2의 24승, 대략 1600만 가지 색상을 디지털 카메라는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눈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특정 색상에 대해 8~16비트 단계의 명암 단계를 가지는 카메라와는 달리, 인간의 눈은 여러 가지 센서가 서로 제각기 동작한 결과물을 가지고 보게 된다. 사람의 눈을 구성하는 촬상 소자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간상체(rod cell) - 명암 구분만 하는 흑백 감지 기능
  2. L 추상체(L-type cone cell) - 장파장(적색 계열) 감지
  3. M 추상체(M-type cone cell) - 중간 파장(노랑, 초록 계열) 감지
  4. S 추상체(S-type cone cell) - 단파장(청색 계열) 감지
하지만, 이것들이 동시에 동작하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주로 간상체가 동작하며, 밝은 곳에서는 주로 추상체가 동작한다.
물건의 형태와 이동을 인식하는 것은 간상체가 담당하며, 색상은 추상체가 담당한다.
이렇게 서로 역할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는 물건의 색깔이 보이질 않고, 너무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물체의 이동이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착시 현상이 쉽게 발생한다.)

게다가, 감지된 결과물은 RGB 형태로 뇌에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눈이 느끼는 색상 정보는 간상체에서 느끼는 흑백 정보(B/W 채널), L-M 추상체 간의 상대적 명암 차에서 비롯되는 적록 정보(R/G 채널), M-S 추상체 간의 상대적 명암 차에서 비롯되는 황청 정보(Y/B 채널)의 형태로 전달된다. 채도에 대한 정보는 R/G 채널과 Y/B 채널의 신호 크기에 따라서 결정된다.

디지털 카메라와는 많이 다르고, Photoshop이나 3D MAX에서 다루는 색상 모델과도 많은 차이가 있다.

어쨌든, 사람의 경우 구분 가능한 명도 단계는 대략 450~500 단계 정도다. (대략 9 비트)
색상 단계는 150~200 단계. (많이 봐줘도 8 비트)
채도 단계는 약 20 단계. (정말 많이 봐줘서 5 비트)
대략 400만 가지 정도가 되겠다. (덤을 안 주고 그냥 계산할 경우 200만)

와, 400만이면 훌륭하지 않은가?

천만의 말씀. 채도를 구분하는 능력은 대략 20단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목표 색상을 둘러 싸고 있는 주변 색상, 명암 등을 놓고 채도를 추측하는 것이지, 실제로 그 색상의 정확한 채도 값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자, 사설이 굉장히 길었다.

하지만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서,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사실은 인간 뇌의 처리 능력 한계에 대해서 논하고 싶지만 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터부시 되고 있기 때문에 접어 둔다.)

인간 눈을 구성하는 시신경 개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의 한쪽 눈에는 대략 1억 개의 간상체와 300만 개의 추상체가 자리잡고 있다. 단순 합산으로는 1억 300만 개. 하지만 유효 화소 수란 개념으로 본다면 대략 1억 개 정도의 시신경이 활동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와, 무려 1억 화소! 대단하지 않은가?

가로 세로 1만 픽셀 해상도를 가진 디지털 카메라!? 정말로 고급스런 디지털 카메라이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모니터가 보통 1600 * 1200 = 192만 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정밀도를 가지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600 * 1200 해상도를 가지는 모니터 상에서 7% 정도 발생한 왜곡을 인지를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계산해보자. 대략 7% 정도의 왜곡을 인지를 못한다는 것은 오차 범위가 7% 정도에 달한다는 뜻이라고 봐야 한다. (7%가 최소 오차인지 최대 오차인지에 대한 논의는 접어 두도록 하자, 일단은 7%가 최대 오차라 생각하고 계산을 해보도록 한다.)

192만 화소에 대한 7% 오차는 134,400 화소.
1억 화소에 대한 7% 오차는 700만 화소.

그런데, 이 700만 개의 시세포가 사실은 형태 구분에 도움이 되는 간상체가 아니라 색상 구분에 도움이 되는 추상체라면?

정상 추상체 수 300만 개.
7% 오차에서 추가된 추상체 수 700만 개.

그 결과는?

보통 사람의 3배에 달하는 추상체를 가진 사람?

앞서 언급했던 색상 단계 구분 능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모든 능력이 세포 수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할 경우, 늘어난 추상체 수는 색각 능력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면 색상 단계는 150~200에서 3배로 늘어난 350~600 단계. (정말 많이 봐줘서 10 비트)
채도 단계는 약 20 단계에서 60 단계. (약 6 비트)

다시 계산해보면, 700만 개의 추가 추상체를 가진 사람이 구분할 수 있는 색상 단계 수는?

무려 1천 800만 가지!
24bit true color를 능가하는 진정한 색각(錯覺) 능력자!


보통 사람이 200만 가지 색상을 구분할 수 있는데 반해서, 이런 사람들은 그에 비하여 무려 9배나 정확한 색감을 가진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색감이라면……다른 모든 단점들은 다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 멋진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꼭 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당신 주변에 세상을 뒤집어 놓을 천재적인 화가가 무더기로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상상이다.


물론 위의 가정들은 다 한낱 가정들일 뿐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인 발상이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항상 예외란 존재하는 법이 아닌가.
지금 당신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미래의 세계적 예술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모르는 일이다, 정말 7%의 오차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엄청난 재능이 숨어 있다고 한다면, 지금 아무 생각 없이 CD-ROM에 담아둔 그 사람의 형이상학적 3D MAX 모델링 데이터 1개가, 100년 뒤에 소더비 경매장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될지도?
by Fanciski | 2006/08/15 16:29 | 잡학과 박물학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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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iBe at 2007/06/11 20:03
ㅎㅎ 모니터 때문에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어왔는데 정말 재밌네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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