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 이름을 짓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짓지 못한다.

태어나자마자 자기 이름을 선언하는 신도 내가 알기론 없다.
예외적으로 일반적인 신, 이란 뜻을 가진 단어를 특정 신이 자기 자신을 부르는 이름으로 사용하라고 선언한 경우는 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지은 것이지, 그 이름을 타고난 것은 아니니 자기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굳이 비유하자면 잘 나가는 연예인이 어느 날 이미지 관리를 위해 새로 예명을 지은 경우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비슷한 예로, 태어나자마자 내가 전 세계 지존이니라, 라는 선언을 하신 분이 있다고 하지만 그 분도 자기 이름은 못 지으셨다.

결국 이름이란 건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이 지어주게 마련인데…….


가끔 이름을 지어야 할 때가 생긴다.

사람 이름을 지어야 할 일은 평생 몇 번 안 생기는 것 같고…….
사람 이름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사람들 꽤 많다. 자식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시고, 손자손녀 이름은 자식이 지어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의외로 작명소에 의존해버리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이름을 저렇게 쉽게 지어버릴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사실, 생각보다 사람 이름이란 것이 짓기 편한 물건이다. 우리나라는 철저한 한자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대충 한자 뜻에 맞춰서 지으면 나름대로 그럴싸한 이름이 되기 때문이다. 외국처럼, 단순히 발음이 기묘하다는 것 때문에 놀림감이 되거나 하는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허나, 제품 이름은 그렇지 않다.

좋은 이름은 어떤 이름일까.

내가 보기에, 좋은 이름이란 아래와 같은 조건을 갖춘 이름이다.

외우기 쉽고, 어감이 좋으며, 제품의 이미지와 부합해야 하고, 쉽게 질리지 않는 이름.

이런 이름은 짓기 쉽지 않다. 외우기 쉬운 단어들은 이미 다른 제품들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어감이 좋은 단어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거나 외우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고, 제품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것을 찾다 보면 지나치게 긴 서술형이 되거나 제품의 신비감이 떨어지기 십상이며, 쉽게 질리지 않으려면 이름이 우아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카피 라이터들이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힘들다 보니, 상당 수의 카피 라이터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증세를 보이게 된다. 이런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제시한다. 숙지하고 사회 생활에 응용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를 것으로 믿는다.

    1. 내 작명 센스는 국제 표준.
일을 쉽게 끝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일단 이름을 대충 지어 놓고, 자기가 지은 이름이 최고니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고 우긴다.
발언권(지위 또는 경력이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이 강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기업 CEO의 발언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누*라 라던가 *간자 같은 게 여기 속할 것이다.

    2. 완벽한 이름은 없다, 한 가지 특징에 올 인!!
어차피 완벽한 이름은 나올 수 없으니, 뭔가 특징을 하나 잡아서 올인 한다.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을 그냥 제품명으로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헤이즐넛이 들어간 제품 이름을 헤이즐넛이라고 짓는 게 이런 데 속한다.
아예 깨는 이름을 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말로 먹히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으니까.

    3. 작명이란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기술이다.
이름은 대충 지어놓고, 감언이설로 클라이언트에게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설명이 안 통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참석자들을 감금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회의실 안이 금연구역일 경우,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감금은 탁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세뇌는 최고의 설득법이다.

    4.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 광고비용이나 챙긴다.
대강 만든 이름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이, 광고를 많이 집행해서 소비자들을 상대로 세뇌를 계획한다.
클라이언트가 같은 그룹 또는 계열사라면 잘 먹히지 않는 방법이다.
광고비용만 착실히 집행된다면, 지렁이를 용 만드는 궁극의 기술이다.

   5. 제품의 성패가 결정되기 전에 이직한다.
이것이 핵심 포인트.

노력하라.
마치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위의 조언들을 실천할 수 있게만 된다면 머지 않아
업계의 전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라.
노력 없이 승리는 없다.

by Fanciski | 2006/07/01 23:01 | 혼돈과 몽상학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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